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최정남·강연정 부부간첩 사건 (문단 편집) == 간첩 활동의 내용 == 이들이 지시받은 업무는 다음과 같았다. * [[https://mnews.joins.com/amparticle/3557540|기본 업무]] * 1. 고정간첩 [[고영복]], 심정웅에 대한 지도검열. (심정웅에게 암호 해독법과 신형 무전기 사용법 교육, [[조국통일상]] 수상 소식 전해줌, 유사시 [[서울 지하철]]을 마비시킬 방안을 알아낼 것) * 2. 서울대 사회학과 [[고영복]] 명예 교수[* 고 교수는 [[대법원]] 판결로 징역 2년이 확정되자 명예교수직이 박탈되었고 [[1999년]] 2월 사면받아 1년 3개월만에 석방되어 2011년에 사망했다.]를 통해 서울대 [[사회학과]] 김(金)모 교수(60) 포섭 * 3. 새로운 공작 대상자로 전국연합 산하 [[울산연합]] 정(鄭) (35)씨와 전주시의원 박(朴) (34) 씨 포섭 * 그 외에 전국 각지에 [[드보크]] 설치하고 무기 은닉하기 * 부 업무 * 1. [[황장엽]] 거주지 파악: 당시 암살을 시도하고 있었다. * 2. 남한 정세 자료: 한국의 대통령 선거 동향 등 * 3. 비행기, 열차, 버스 시간표 수집 * 4. [[경북대]] [[김순권]] 교수가 개발한 우량 [[옥수수]] 종자 입수 * 5. 전자 [[주민등록증]] 입수: 당시 시범사업 실시 중이었다. 이들은 권총 2정과 3,000만원 가량의 공작금, 가짜 주민등록증과 가짜 경찰 신분증 등을 갖고 출발했다. [[1997년]] [[7월 30일]] 오후 7시쯤 선박으로 [[남포항]]을 출발해 해군 작전 지역 밖인 공해상으로 남하해 [[제주도]]를 돌아 [[일본]] [[대마도]] 부근 공해상에서 [[거제도]]로 접근했다. 남포항을 [[미국]] 첩보위성이 감시 중이었으나 당시 기술력으로는 공해상으로 나온 뒤 일반 어선과 섞이면 추적이 불가능했다. 무장 안내원 20명, 호송 안내원 3명이 탑승하고 있었다. 선박은 [[8월 2일]] 밤 9시경 [[거제도]] 앞 공해상에서 5t 상당의 반잠수정을 내렸다. 당시 기술력으로는 스텔스 도료를 바른 이 반잠수정을 찾아낼 수 없었다. 거제도 해안에도 레이더기지가 있으나 12마일 밖에서부터는 완전잠수로 항해했기 때문에 레이더 기지에서 포착하지 못했다. 11시경 거제도 해안 500m 지점에서 두 사람은 수중침투장비로 갈아입은 채 반잠수정을 떠났고 11시 30분경 [[경상남도]] [[거제시]] 갈곶리 해안에 상륙했다. 당시 한국 방첩기관은 해상 침투에 대해서는 마음놓고 있었다. 같은 해 2월 [[이한영 암살 사건]]이 발생했는데 [[https://news.donga.com/amp/all/19970217/7233257/1|합동수사본부]]는 암살자들의 입국 경로에 대해 적어도 육상, 해상은 아닐 것으로 보고 공항이나 항만 등 정식 경로로 당당하게 침투했을 것이라고 한참 착각하고 있었다. [[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]] 발생 이후 육상이나 해상통로로 침투하기 힘들어졌다는 것이 1차적 판단근거였다. 위에서 이 모양이니 해상 침투가 굉장히 용이했다. 침투 후 이들은 20일간 [[경주시]], [[부산광역시]], [[광주광역시]] 등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며 드보크를 설치하고 현지 적응 훈련을 했으며 8월 23일에는 [[서울특별시]] [[구로동]]에 숙소를 마련했다. 이후 고정간첩 심정웅을 6번 만났다. 그는 [[서울메트로|서울지하철공사]]에 근무하던 고정간첩으로 중학생 때 북한에 전향한 뒤 유사시 '''[[서울]]의 철도망과 지하철망을 파괴'''할 목적으로 40년 가까이 철도업무에 종사하며 잠복해 있던 자였다. 그에게 암호 해독법과 신형 [[무전기]] 사용 방법을 교육시켰고 조국통일상을 수상했다는 것을 알려주었으며 [[김정일]]에게 바치는 충성의 편지를 받아내고 유사시 지하철을 마비시킬 방법을 받아냈는데 그것은 바로 서울지하철의 지하 구간에 고이는 물을 퍼내 개천가 및 한강 등지로 방류조치하는 집수정 장치(물펌프의 일종)에 폭탄 테러를 저지르는 방법이었다. 이 사건을 취재 보도한 [[http://news.chosun.com/svc/content_view/content_view.html?contid=1997112070355|조선일보]]의 [[http://news.chosun.com/site/data/html_dir/1997/11/21/1997112170389.html|보도자료]]가 있다. 심정웅은 최정남, 강연정이 체포된 직후 역시 체포되어 1998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10년을 선고받았으나 전향하여 1999년 8.15 특사에서 감형되었고 2000년 8.15 특사에서 [[형집행정지]]로 석방되었다. 그런데 1997년 [[10월 21일]] 정OO씨(35)가 "남녀 2명이 찾아와 북한에서 왔으며 북으로 함께 가자"고 말했다며 [[간첩신고]]를 했다. 정씨는 재야단체인 '[[울산연합]]'의 간부로 이들 2명을 안기부에서 보낸 함정으로 착각하고 자진신고한 후 기자회견을 열어 버린 것이다. 당시 안기부에서는 이런 프락치를 보낸 적이 없었기 때문에(...) 북한 간첩의 소행으로 판단하고 1997년 [[10월 27일]] 오전 11시 30분 울산 코리아나 호텔 커피숍에서 정씨를 재차 접촉하려던 남녀 2명을 현장에서 검거했다. --얼떨결에 애국자 된 정씨-- 당시 커피숍에 있던 30여명의 사람들은 모두 안기부 요원들로, 자리잡고 있다가 일제히 권총을 빼들고 3명을 겨냥했다. 요원들이 덮치자 여 간첩은 "여보, 여보…"란 외마디 소리를 냈고 남 간첩은 별다른 반항 없이 수갑을 받았다. 최정남과 강연정은 한국 현실에 어두워서인지 정모 씨가 대대적으로 [[기자회견]]까지 했는데도 이를 모르고 다시 약속장소에 무방비로 나왔던 것이다. 그리고 체포 후 이들의 증언으로 드러난 것이 바로 [[민주민족혁명당 사건]]이다. 이 사건은 이들의 체포 직후에는 보도되지 않았다가 한 달 여가 지나고 여러 정황이 드러난 후인 1997년 11월 20일에 집중적으로 보도되었다. 그런데 하필 바로 다음날 [[1997년 외환 위기|초대형 빅뉴스]]가 터져 버리는 바람에 사건 자체가 묻혀 버린 감이 없지 않다. 국정원은 심문 전에 이들 부부에 대해 철저하게 몸수색을 벌여 곳곳에 숨긴 독약 앰플을 여러 개 찾아냈으나 강연정은 끝내 화장실에서 항문에 숨겨 두었던 앰플을 이용해 [[자살]]해 버렸고 최정남은 전향하여 국방부 정보본부에서 북한 정보 분석업무를 맡고 있다는 NHK의 기사가 2006년에 나온 바 있다.[[http://www.rfa.org/korean/news/former_trained_nk_spy_work_sk-20060417.html|#]] [[김현희]]가 최정남을 전향시키기 위해서 만난 적이 있다는 증언을 한 적도 있다. 이후 [[이제 만나러 갑니다(프로그램)|이제 만나러 갑니다]]에서 [[주성하]]는 최정남이 [[국군정보사령부]]에서 근무했다고 밝혔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